2010년 영국 정부 내각 구성(2010 United Kingdom government formation)은 2010년 영국 정치권에서 이뤄진 연정 협상 및 출범 과정(조각)을 말한다. 2010년 5월 6일 치러진 영국 총선은 보수당과 노동당 양대 정당 모두 원내과반 확보에 실패한 헝 의회로 결론이 났다. 이는 1974년 총선 이후 36년 만의 일이었다. 총선 다음날인 5월 7일부터 5월 12일까지, 각 원내정당은 전후 이래 두번째 연립 내각 구성협의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내각을 이끌고 있었던 노동당 (고든 브라운 대표)은 선거에서 패하는 동시에 13년만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으나, 실제 정부 출범 전까지 과도정부로서 재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1야당인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대표)은 이번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확보하며 제1당에 올랐으나, 과반 의석수를 넘기기에는 몇 석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양당 지휘부는 제3당이었던 자유민주당 (닉 클레그 대표)과 함께 연립내각 출범의 성패를 결정할 연속 회동에 착수하게 되었다. 제3당으로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닉 클레그 자유민주당 대표는 어느 쪽이든지 더 많은 의석수를 확보한 정당이라면 논의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선거 결과가 헝 의회로 결정난 직후 자유민주당은 보수당과의 접촉을 시작해, 주말까지 회동을 이어갔다. 한편으로 노동당과의 협의도 이뤄지고 있었는데,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노동당과의 연립내각 참여 의사를 밝혔고, 자유민주당은 물론 그 밖의 소수정당까지 내각 구성에 참여시켜 범진보 연립내각을 출범시키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고든 브라운 대표의 총리직 연임이 노동당-자유민주당 간의 협상 타결에 중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5월 10일 고든 브라운 총리가 노동당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의 합의 도달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튿날 5월 11일 자유민주당은 보수당과의 협상 타결을 선언하였다. 같은 날 고든 브라운은 총리직과 노동당 대표직에서 사퇴하였으며,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대표가 이끄는 보수-자민 연립내각이 출범하게 되었다. 5월 12일 자정을 넘긴 시각 자유민주당은 원내정당 및 연방집행부 회의를 마치고 연정 협상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되었다"고 선언하였으며, 그날 오후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은 협상조건을 명시한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내각 협약을 발표하였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대표는 영국 총리에, 닉 클레그 자민당 대표는 영국 부총리에 취임하였다. 배경 이 부분의 본문은 토니 블레어 정권, 고든 브라운 정권 및 신노동당입니다. 1997년 5월 영국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 대표가 이끌던 노동당이 압승하면서,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 교체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영국은 보수당의 18년 장기 집권을 종식시켰다.[1][2][3] 첫 총선에서 원내 의석수 418석에 과반 초과 의석수 179석[4][5]을 확보한 노동당은 2001년 총선과 2005년 총선에서도 연달아 승리를 이어갔다.[6] 블레어 신임 내각은 국가최저임금제 도입과 병원 대기명단 감축,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자치입법권 부여 등의 정책 수립으로 큰 지지를 얻었으며, 북아일랜드 평화협상에서도 중대한 역할을 해내는 등의 업적을 이뤄냈다.[3][3]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영국군 파병 결정으로 큰 사회적 논란과 비판 여론에 직면하고, 블레어 자신을 따르던 의원들도 등을 돌리는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7] 2007년 6월 토니 블레어는 총리직을 사퇴하였으며, 이어진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고든 브라운이 후임 당대표이자 영국 총리직에 올랐다.[6] 블레어 정권이 들어선 지난 10년 동안 영국 경제는 호황을 누렸으나,[3] 브라운 정권은 내각 출범 직후에 터진 세계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경제불황에 직면해야 했다.[8] 금융위기 당시 블레어 정권의 대응에 관해서는 비록 어려움에 직면한 영국 내 은행에게 재정 원조를 시행하는 등 적절했다는 평가도 있으나, 이들 은행의 자본 재조정은 각 은행이 축적한 민간부채를 공공부채로 전환하여 영국의 국가 채무가 급상승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3][9][10] 이러한 경제적 실책과 더불어 브라운 총리가 각 언론으로부터 대인관계 능력이 부족한 인물로 평가되면서 자질 논란이 불거졌고,[7] 브라운 정권 말기였던 2009년에는 국회의원들의 지출 스캔들이 터지면서 영국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신뢰가 타격을 입기도 하였다.[3] 2010년 4월, 지난 총선으로부터 5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총선 실시가 대두되고 있었다. 2010년 4월 6일 브라운 총리는 버킹엄 궁전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알현하여, 4월 12일부로 의회 해산 및 총선 준비를 건의하였다. 이후 다우닝 가에서 진행된 실시간 기자회견에서 브라운 총리는 오는 5월 6일에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11] 선거 공표일부터 의회 해산일까지 남은 회기 동안 영국 의회는 일명 워시업 (wash-up)이라 부르는, 회기 종료 전까지 미완료 상태에 머물러 있는 모든 입법 절차의 처리 기간에 돌입했다.[6] 2010년 영국 총선 당시 유고브가 조사한 각 정당 지지도. 푸른색은 보수당, 붉은색은 노동당, 노란색은 자유민주당, 회색은 기타 정당이다. 노동당은 1997년 집권 이래 네번째 정권 재창출과 지지율 복구를 목표로 선거전에 돌입하였으며,[12] 보수당은 반대로 90년대 이래 침체기에서 벗어나 영국 정계의 우위 탈환을 노리고, 노동당을 대신해 여당으로 발돋움하고자 했다.[13] 자유민주당은 양당으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동시에, 과반정당이 없는 헝 의회 국면시 세력 균형에 있어 결정권을 쥘 수 있다는 희망을 걸었다.[14] 영국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3당 대표가 모인 TV 토론회를 거치며 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은 상승세에 올라, 각계에서 자민당의 내각 구성 참여 가능성을 고려할 수준까지 도달하고 있었다.[15][16] 또 세 차례에 걸친 토론회 동안 캐머런 보수당 대표와 클레그 자민당 대표는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반면, 브라운 총리는 그다지 부각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17] 여기에 노동당은 브라운 총리의 실언이라는 또다른 악재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레이터맨체스터 로치데일의 노동당 유세에 참여한 브라운 총리가 길리언 더피라는 65세 여성 유권자로부터 연금 수령과 동유럽 이민자 문제로 비난받은 뒤, 차를 타고 떠나면서 스카이 뉴스 취재진이 옷깃에 붙인 마이크를 깜빡하고는 비서에게 "고집불통 여자 같으니" (bigoted woman)란 말을 내뱉었고, 이는 곧 언론에 고스란히 보도되었다.[18][17][19][20] 투표일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자민당 표심이 노동당과 보수당으로 살짝 선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부분의 최종 여론조사에서는 보수당 36%, 노동당 28%, 자민당 27%에서 1포인트 차로 뒤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21][22] 그러나 부동층 유권자로 기록된 규모가 만만치 않아 총선 결과에 불확실성을 더했다.[23][24] 3당과 더불어 각 지역정당과 소수정당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렸다. 2007년 스코틀랜드 총선 승리에 고무되어 있던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원내 20석을 확보하고 세력 균형 결정권을 쥐는 것을,[25] 웨일스 지역정당인 플라이드 컴리 역시 웨일스 내 의석 확대를 목표로 삼았다.[26] 북아일랜드의 경우 민주연합당은 현재 의석수 유지 및 확대로 원내 제4당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27][28] 이밖에 각 지방선거와 2009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선전한 영국독립당, 녹색당, 영국국민당 등의 소수정당들도 원내정당으로서의 수명 연장을 꾀했다.[29][30] 총선 이 부분의 본문은 2010년 영국 총선입니다. 2010년 5월 6일 총선이 실시되었다. 투표율은 지난 2005년 총선의 61%에서 소폭 증가한 65%로 기록되었다.[17] 이날 밤 10시, BBC, 스카이, ITV 뉴스가 공동으로 의뢰해 GfK NOP와 입소스 MORI가 조사한 출구조사가 발표되었다.[31] 영국 전역의 130개 투표소에서 집계된 출구조사 결과는 과반을 달성한 정당이 없는 헝 의회로 드러났으며, 다만 보수당이 과반에서 19석 부족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실제 선거 결과는 21석 부족).[32][33] 전체 예측 의석수로는 보수당이 307석, 노동당이 255석, 자유민주당이 59석, 기타 정당이 29석으로 집계되었다.[32] 다만 개표결과가 속속 집계되면서 노동당 지지 표심이 좀 더 드러날 것으로 예측 의석수가 정정되었다.[34] 무엇보다도 지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노동당에 맞먹을 정도로 큰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되던 자유민주당이 생각보다 부진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정치해설가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35] 이튿날 5월 7일 오전 5시 36분, BBC는 보수당이 과반에서 20석 부족한 306석, 노동당이 262석, 자민당이 55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했다.[34] 5월 7일 오전 9시 41분, BBC는 선두를 달리는 보수당이 단독내각 구성에 필요한 의석수 확보에 실패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선거 결과를 '헝 의회'로 확정했다.[36] 서민원, 즉 영국 하원의 전체 의석수 650석 중 단순 과반 의석수는 총 326석이었으며, 북아일랜드 정당 신 페인 소속 의원 5명이 서민원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영한 실질 과반의석수는 323석이었다. 그런 시점에서 보수당은 290석, 노동당은 247석, 자유민주당은 51석을 차지한 것이다.[37][38] 개표가 끝난 최종 선거 결과는 보수당 306석, 노동당 258석, 자유민주당 57석이었으며, 제1당을 확정한 보수당 역시 과반에서 20석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39][40] 2010년 총선 결과에 따른 영국 서민원 (하원) 의석분포도. 어느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 총 532석이 걸려 있었던 잉글랜드에서는 보수당이 61석의 과반 우위를 점하였으며, 노동당으로부터 평균 5.6%의 표심 선회를 이끌었다.[41] 다만 532개 지역구 중에서 서스크 몰턴 지역구는 후보자의 사망으로 총선 당일이 아닌 5월 27일에 선거를 치렀다.[42] 총 59석이 걸려 있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지난 2005년 총선 결과와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노동당이 중간 재보궐선거로 잃었던 지역구 두 곳을 다시 탈환하였다.[43][44] 득표율로는 노동당이 2.5%, 보수당이 0.9% 증가하였으며,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 선회한 표심이 0.8%였다. 보수당은 지역구 한 곳밖에 얻지 못하였으며,[45] 7석에서 20석으로 의석 확대를 노렸던 스코틀랜드 국민당 역시 별다른 선전을 거두지 못했다.[43] 40석이 걸렸던 웨일스에서는 보수당이 3석에서 8석으로 의석을 늘렸으며, 자유민주당이 1곳, 노동당이 4곳을 보수당에게 넘겼다. 웨일스 국민주의 정당인 플라이드 컴리 역시 노동당 지역구였던 아번을 탈환하여 1석을 늘렸다. 결과적으로 노동당은 4석을 잃었으나 총 26석을 차지하면서 웨일스의 승자가 되었다.[46] 18석이 걸렸던 북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국민주의 정당인 신 페인과 사회민주노동당이 의석을 얻고, 아일랜드 연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과 얼스터 연합당[a]은 1석씩 의석을 잃었다. 특히 얼스터 연합당은 유일한 지역구를 잃어 원외정당으로 전락했으며, 민주연합당의 지역구만 남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국민주의 정당이 8석을, 연합주의 정당도 8석을, 북아일랜드 연합당이 1석, 연합파 무소속 후보가 1석을 차지하였다. 연합주의 정당이 영국 총선에서 북아일랜드 지역구 과반확보에 실패한 것은 아일랜드 분할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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